버닝(2018) 종수와 해미 단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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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영화 <버닝>, 글 출처: <버닝 각본집>에서 좀 수정함, 초본 느낌으로)
A종수(27세)
B해미(27세)
S#6. 버스 정류장 / 도로 – 후암동 (실외/낮) + S#7. 골목길 – 후암동 (실외/낮) + S#9. 해미의 집 (실내/낮)
다음 날.
남산 아래 후암동의 마을버스 정류장.
로터리를 중심으로 산동네로 올라가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어서 사람들의 왕래가 많다.
정류장에 근처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해미, 종수를 기다리고 있다.
주변의 노인네 한 사람이 노골적으로 쳐다보지만, 모른 척 하는 해미.
이윽고 마을버스가 도착.
표정이 밝아지는 해미, 버스 뒷문으로 빠르게 걸어가 종수를 맞이한다.
버스에서 내리는 종수, 배낭을 메고 큰 가방까지 들었다.
나란히 도로를 걷는 종수와 해미.
B해미: (종수의 짐들을 이리저리 보며) 이 짐들은 다 뭐야?
A종수: 아⋯⋯ (해미를 슬쩍 보며) 파주 집으로 이사 가는 중이야.
B해미: 오늘? (걸어가며 자연스럽게 팔짱을 낀다.)
A종수: (고개를 까닥이고 머쓱 웃으며) 어⋯⋯. (팔이 해미 몸에 닿자 조금 놀라지만 내색하지 않는다.)
잠시 후 – 가파른 오르막 골목길을 오르는 종수와 해미.
B해미: (종수를 보며) 파주 집에는 누가 있어?
A종수: 아무도 없어⋯⋯. 엄마는 나 어릴 때 집 나갔고. (‘너도 알지?’ 하는 표정으로 해미를 슬쩍 쳐다본다.)
B해미: (알고 있다는 표정.)
A종수: 누나는 몇 년 전에 결혼했고⋯⋯ 아버지 혼자 소 키우면서 살고 있었는데, 좀 문제가 생겨서⋯⋯ 내가 집에 들어가야 되게 생겼어. (해미를 보며) 무슨 문제냐고 안 물어보네?
B해미: ⋯⋯문제야 항상 있잖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 집이야.
잠시 후 – 해미의 집에 도착한 종수와 해미.
A종수: (여자 혼자 사는 방을 처음 들어와 보는 듯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 한다.) 야, 집 좋네, 이만하면⋯⋯. 나 전에 살던 방은 싱크대 옆에 변기가 있었는데⋯⋯. (가져온 짐들과 신발을 정리)
B해미: (어질러진 옷가지를 민망한 듯 재빨리 치우고, 창문을 열면서) 이 집은 북향이어서 늘 춥고 어두운데, 하루에 딱 한 번 햇빛이 들어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기⋯⋯. 남산 전망대 유리창에 햇빛이 반사돼서 여기까지 들어와.
A종수: (잘 안 보이는지가까이 와서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본다.)
B해미: 근데 아주 잠깐 들어오기 때문에 진짜 운이 좋아야 볼 수 있어. (침대 끝에 앉고 손을 무릎 아래에 집어 넣고) 보일아⋯⋯. 나와 봐.
A종수: (해미의 부름에 뒤를 돌아본다.)
B해미: 보일아.
A종수: (뒤를 계속 보며) 고양이 이름이 보일이야? (방 안을 둘러보지만, 좁은 방 어디에도 보일이는 보이지 않는다.
B해미: 응, 보일이. (머뭇거리다가) 새끼 때 지하 보일러실에 버려져서 울고 있는 걸 내가 데려왔거든.
A종수: (다시 몸을 돌려 해미를 본다.)
B해미: (종수를 보며) 근데 우리 보일이는 낯선 사람이 오면 어딘가에 숨어서 절대 안 나와. (고개를 살짝 틀며) 자폐증이 좀 심해갖구⋯⋯.
A종수: (말이 왠지 의심스러운) 야, 혹시 보일이도 상상 속에만 존재 하는 거 아니야? (해미 침대 주의를 눈으로 보며) 너 없을 때 여기 와서 상상 속의 고양이한테 먹이를 줘야 되는 거 아니냐고.
B해미: (눈썹이 올라간다.) 있지도 않은 고양이한테 밥을 주라고 내가 널 여기까지 불렀다구? (의미심장하게 미소를 띄며) ⋯⋯재밌네.
A종수: (같이 피식하곤 해미를 똑바로 보며) 내가⋯⋯ 고양이가 없다는 걸 잊어먹으면 돼?
B해미: (알쏭달쏭한 미소만 짓다가 피식 웃고는) 너 기억나? 옛날에 나 못생겼다고 한 거.
A종수: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표정) 정말? 내가 그랬었다고?
B해미: 어느 날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데⋯⋯ 갑자기 니가 길을 건너오더니, 그렇게 말했잖아. 너 진짜 못생겼다고.
A종수: (전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뀐다.)
B해미: 그게 중학교 다닐 때 니가 나한테 한 유일한 말이었어.
A종수: (말없이 해미만 쳐다본다.)
B해미: (속삭이듯 낮은 목소리로) 이제 진실을 얘기해 봐⋯⋯.
A종수: (말이 없다.)
B해미: (몸을 한번 들썩, 가까이 당겨 앉고는) 왜 말을 못 해?
어떤 말도 할 수가 없는 종수,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해미만 쳐다보고 있다.
이윽고 먼저 종수에게 천천히 다가가는 해미.
당황하지만 해미가 입을 맞추자 받아들이는 종수.
놀라고 황홀해서 잠깐 ‘오’하고 신음하는 종수, 이내 눈을 감고 다시 키스를 한다.
서로 안고 입을 맞추는 종수와 해미, 더 격렬하게 키스를 한다.
종수는 어느새 침대 위에 있다.
함께 옷을 벗는 해미와 종수.
종수, 여자와 처음 섹스를 해보는 것처럼 허둥댄다.
옷을 벗다가 옷이 목에 걸리는 종수.
종수를 보다가 옷을 벗겨주는 해미.
이윽고 각자 바지를 벗는 종수와 해미.
이런 일이 익숙한 듯 쉽게 바지를 옆으로 벗어 던지는 해미.
바지를 벗는 종수, 역시 발에 걸리지만 그냥 해미에게 다가간다.
해미의 벗은 몸을 자세히 보는 종수, 너무나 아름다워서 차마 손을 대기도 두려운 것 같다.
해미의 가슴에 손을 가져가려다가 멈칫하고 떼는 종수.
해미는 그런 종수의 손을 다시 잡아 가슴에 올려놓는다.
해미의 가슴을 만지며 다시 키스를 하는 종수.
다시 두 사람은 조급하게 서로의 몸을 탐하기 시작한다.
종수를 받아들이던 해미, 아래로 가져가는 종수 손을 보자 말한다 –
'잠깐만⋯⋯.' 해미의 말에 동작을 멈추는 종수.
팔을 뻗어 침대 밑 바구니를 가져오더니 포장지에 든 콘돔을 꺼내는 해미.
엉거주춤하게 몸을 일으킨 채로 지켜보는 종수.
해미, 종수에게 콘돔을 주고 다시 눕는다.
'⋯⋯해.' 해미가 건네준 콘돔을 받고 고개를 숙여 끼우려고 하는 종수.
그 모습을 누운 채로 보고 있던 해미, 종수가 제대로 하지 못하자 대신 끼워준다.
마침내 종수, 해미의 몸 안으로 들어간다.
서로의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며 옅은 신음을 반복하는 종수와 해미.
그 순간, 문득 침대 머리맡의 벽을 쳐다보는 종수.
남산타워에서 반사된 햇빛이 들어와 벽에 걸려 있다.
프리즘을 통과한 것처럼 엷은 무지개로 싸인, 손수건 크기 정도의 빛 조각.
해미의 몸을 안은 종수, 그 빛 조각을 마치 비현실적인 환영을 보듯이 말없이 보고 있다.
이윽고 그 빛은 서서히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만다.